호머 헐버트 박사 – 한국 근현대사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한국인 인물들만 떠올린다. 그러나 조용히 기록을 남기고, 끝까지 이 나라를 떠나지 않으려 했던 외국인 한 사람이 있었다. 호머 헐버트(Homer Hulbert).

그의 이름은 교과서에서는 짧게 지나가지만, 실제로 그가 남긴 기록과 삶을 따라가다 보면 한 명의 학자가 아니라 한국을 자기 나라처럼 품었던 지식인 여행자에 가까웠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여행은 관광지가 아니라, 한 사람의 사유와 발걸음이 남아 있는 장소를 따라가는 여정이었다.
조선으로 들어온 젊은 학자, 호머 헐버트
호머 헐버트는 1886년, 조선 정부의 초청으로 처음 한반도에 들어왔다. 당시 그는 미국 출신의 교육자이자 언어학자였고, 조선은 막 근대 교육과 외교의 문턱에 서 있던 시기였다.
그가 처음 발을 디딘 곳은 한성(지금의 서울)이었다.
서울에 머무르며 그는 육영공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동시에 한국어와 한글에 깊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단순히 외국어로서의 언어가 아니라, 한글이 가진 체계성과 과학성을 학문적으로 연구한 최초의 서구 학자 중 한 명이었다.
그가 남긴 저서 『The History of Korea』 는 단순한 역사서가 아니라, 당시 조선을 외부인의 시선이 아닌 내부인의 감정으로 기록한 보기 드문 자료다.
서울, 헐버트가 가장 오래 머물렀던 도시
서울은 헐버트의 활동 중심지였다.
지금의 종로, 정동 일대는 그가 실제로 오가며 생활하고 사유했던 공간이다.
정동은 당시 외국 공사관과 학교, 교회가 밀집해 있던 지역으로, 헐버트 역시 이 일대에서 교육·연구·저술 활동을 병행했다.
지금 이 거리를 걸어보면, 번화한 도심 한가운데서도 묘하게 시간이 겹쳐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가 한글을 연구하고, 한국의 주권 문제에 목소리를 냈던 장소가 바로 이곳이었기 때문이다.
이 여행에서 인상 깊었던 점은, 서울이 단순한 ‘수도’가 아니라 지식인의 사유가 쌓인 도시로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지방을 기록한 외국인, 호머 헐버트 박사 이동 경로
헐버트는 서울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그는 전국 여러 지역을 직접 다니며 한국의 지리, 민속, 언어 차이를 관찰했다.
특히 그는 지방의 생활상을 기록하는 데 큰 관심을 가졌다. 당시 외국인 대부분이 수도에만 머무르며 피상적인 관찰에 그쳤던 것과 달리, 헐버트는 지역의 삶 자체를 이해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이 점이 오늘날 그를 단순한 외교 인사가 아니라, 인문학적 여행자로 다시 읽게 만드는 이유다.
한국 독립을 위해 목소리를 낸 외국인
헐버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은, 그가 조선의 독립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는 사실이다.
을사늑약 이후 그는 국제 사회에 조선의 상황을 알리기 위해 끊임없이 글을 썼고, 결국 이로 인해 조선에서 추방되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는 한국을 떠난 뒤에도 멈추지 않았다.
미국과 유럽을 돌며 강연과 저술을 통해 한국의 현실을 알렸고,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이어갔다.
이 모든 과정은 한 나라의 시민이 아닌 외국인 학자가 감당하기엔 매우 큰 위험이었지만, 그는 끝까지 물러서지 않았다.
다시 돌아온 한국, 그리고 마지막 선택
광복 이후, 헐버트는 다시 한국 땅을 밟았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마지막을 이곳에서 보내기를 원했다.
그가 남긴 말 중 가장 많이 회자되는 문장은 이것이다.
“I would rather be buried in Korea than anywhere else.”
그의 유해는 현재 서울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에 안장되어 있다.
이곳은 단순한 묘지가 아니라, 한국 근현대사 속에서 조용히 헌신했던 외국인들의 이야기가 모여 있는 공간이다.
실제로 이곳을 방문했을 때, 관광객보다 조용히 산책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더 많았다.
묘비 앞에 서 있으면, 여행이라는 말이 아닌 기억을 만나는 시간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여행자로서 다시 읽는 호머 헐버트 박사
호머 헐버트를 따라가는 여행은 유명한 명소를 도는 일정이 아니다.
대신 서울의 오래된 거리, 조용한 묘원, 기록이 남아 있는 장소를 하나씩 연결하는 여정이다.
이 여행을 통해 느낀 것은 분명하다.
헐버트는 한국을 연구한 학자가 아니라, 한국을 이해하려 했던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의 기록은 지금도 살아 있고, 그의 이름은 여전히 여행의 주제가 된다.
-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공적 소개 – 호머 헐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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