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시인 길 1편 연세대 시인의 언덕

윤동주 –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중학교 국어 시간, 암송 시험 때문에 달달 외웠던 윤동주의 「서시」. 60년 가까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외워진다.

김유정 3부작을 끝내고, 다음 작가를 고민하다 문득 윤동주가 떠올랐다.

“그 시인은 어디서 저 시를 썼을까?”

검색해보니 서울 신촌, 연세대학교 안에 **“시인의 언덕”**이라는 곳이 있단다. 윤동주가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 다니던 시절 산책하던 곳. 그곳에 윤동주 시비가 있고, 바로 옆 청운동 인왕산 자락엔 윤동주문학관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마포구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윤동주가 독립운동 혐의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다 1945년 2월 16일, 광복 6개월 전에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한… 그 이전에 서대문형무소를 거쳐갔다.

“27세에 요절한 시인의 마지막 길을 따라가보자.”

2026년 1월 어느 금요일 오전, 나는 지하철 2호선 신촌역에 내렸다.


목차

1부: 연세대학교 – 윤동주가 다닌 연희전문학교

📍 연세대학교 정문

  • 주소: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 50
  • 교통: 지하철 2호선 신촌역 2번 출구, 도보 10분
  • 입장: 자유 관람 (외부인 출입 가능)
  • 주차: 교내 방문자 주차장 (유료)

🎓 1941년 연희전문학교 문과 입학

신촌역에서 연세대 정문까지 걸어가는 길. 대학생들이 바쁘게 오간다.

연세대 = 1885년 설립 (구 연희전문학교)

윤동주는 1941년 4월,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했다. 당시 나이 23세.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나, 평양 숭실중학교를 거쳐, 서울로 온 조선인 청년.

정문을 지나 캠퍼스 안으로 들어갔다.

“윤동주도 이 길을 걸었겠지.”

1941년. 일제 강점기 말기. 조선어 사용 금지, 창씨개명 강요, 징병 징용이 한창이던 시절. 윤동주는 이 캠퍼스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 스팀슨관 (구 핀슨관) – 윤동주가 공부한 건물

캠퍼스 안내도를 보니 “스팀슨관” (Stimson Hall)이 보인다.

1920년 준공, 연희전문 본관. 윤동주가 수업 들은 바로 그 건물. 지금도 그대로 서 있다.

건물 앞에 섰다. 붉은 벽돌, 아치형 창문, 고딕 양식. 100년 넘은 건물이 아직도 튼튼하다.

안내판:

“이 건물에서 윤동주, 정지용, 김소월 등 한국 문학의 거장들이 공부했습니다.”

건물 내부는 행정실로 사용 중이라 출입 제한. 창문 너머로 내부를 들여다봤다.

“저 책상에서 윤동주가 시를 썼을까?”


📜 1943년 7월 졸업 – 하지만 학적부에 ‘평양 윤씨’

윤동주는 1943년 7월 연희전문을 졸업했다. 하지만 졸업장에 이름은 “히라누마 도주(平沼東柱)”. 창씨개명된 이름.

본명: 윤동주 (尹東柱)
창씨개명: 히라누마 도주 (平沼東柱)
일본 유학: 1942년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学) 영문과 입학

윤동주는 연희전문 졸업 후 일본으로 건너갔다. 더 공부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징병을 피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당시 조선 청년들은 징병되면 전쟁터로 끌려갔다.

하지만 일본에서도 윤동주는 안전하지 못했다.


2부: 시인의 언덕 – 윤동주 시비와 청춘의 기억

📍 시인의 언덕 (연세대 노천극장 뒤편)

스팀슨관에서 도보 5분. 노천극장 뒤편 언덕길.

**“시인의 언덕”**이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계단을 올라갔다. 언덕 위에 윤동주 시비가 서 있다.


🗿 윤동주 시비 – “자화상” 전문 새김

검은 화강암에 새겨진 시:

자화상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시비 앞에 한참 섰다.

“우물 속 사나이 = 자기 자신 = 부끄러운 나”

일제 강점기, 창씨개명을 해야 했던 조선인 청년. 독립운동도 못 하고, 그저 시만 쓰는 자신이 부끄러웠던 윤동주. 우물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며 “미워졌다가, 가엾어졌다가, 그리워졌다가…”

“나도 60년 인생 돌아보면 부끄러운 순간 많지.”


🌳 언덕 위에서 본 서울 풍경

시비 뒤로 벤치가 있다. 앉아서 서울 풍경을 내려다봤다.

왼쪽: 안산 (무악재)
정면: 신촌 로터리, 이대 방향
오른쪽: 서대문구 주택가

1941년 윤동주가 본 풍경은 지금과 달랐을 것이다. 고층 빌딩 없고, 한옥과 일본식 건물만 있었을 것.

“윤동주는 여기 앉아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 고향 북간도 생각
  • 어머니 보고 싶은 마음
  • 조국 독립의 꿈
  • 그리고 부끄러운 자신

시인의 언덕에서 30분 앉아 있었다. 대학생들이 지나가며 시비 사진 찍고 간다.

“이 친구들은 윤동주가 누군지 알까?”


3부: 청운동 윤동주문학관 – 물탱크에서 시인을 만나다

📍 윤동주문학관

  • 주소: 서울 종로구 창의문로 119 (청운동)
  • 운영시간: 10:00~18:00 (월요일 휴관)
  • 입장료: 무료
  • 주차: 불가 (대중교통 이용)
  • 교통: 연세대에서 도보 20분 또는 버스 7212번

🚶 연세대 → 청운동 도보 이동

연세대 후문으로 나와 인왕산 방향으로 걸었다.

청운동 = 서촌 북쪽, 인왕산 자락

좁은 골목길, 오래된 한옥, 경사진 언덕. 1941년 윤동주도 이 길을 걸었을까? 아니, 그때 이 동네는 더 한적했을 것이다.

20분 걸어 윤동주문학관 도착.


🏛️ 물탱크를 개조한 문학관

입구부터 특이했다. 건물이 원통형.

안내판:

“이 건물은 1970년대 청운동 주민들에게 수돗물을 공급하던 물탱크와 가압장이었습니다. 2012년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맞아 문학관으로 재탄생했습니다.”

물탱크 = 물을 담는 곳
문학관 = 시를 담는 곳

“시도 물처럼 흐르니까, 잘 어울리네.”


📖 제1전시실 – 윤동주의 생애

입구에서 신발 벗고 들어간다. (실내화 제공)

전시 구성:

  1. 탄생 (1917년 북간도 명동촌)
  2. 성장 (은진중학교, 숭실중학교)
  3. 서울 유학 (연희전문)
  4. 일본 유학 (도시샤대학)
  5. 체포와 옥사 (1945년 후쿠오카 형무소)

💔 1943년 7월 14일 체포 – 독립운동 혐의

전시실 한쪽에 체포 영장 복사본이 있었다.

혐의: 치안유지법 위반 (독립운동 및 민족의식 고취)
증거: 윤동주가 쓴 시 → 일제가 “항일 사상”으로 판단

윤동주가 쓴 시:

  • 「서시」 →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 없기를” = 일제에 대한 저항?
  • 「십자가」 → “못 박혀 있는 손” = 고난받는 조선?
  • 「쉽게 씌어진 시」 → “부끄러운 이름을 쓰고” = 창씨개명 비판?

일제는 시를 읽고 “이놈이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1943년 7월 14일, 윤동주는 일본 교토에서 체포되어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됐다.


🕯️ 1945년 2월 16일 옥사 – 27세, 광복 6개월 전

전시실 끝에 윤동주의 사망진단서 복사본이 있었다.

사인: 불명 (일본 측 기록)
추정: 생체실험 또는 고문 후유증

1945년 2월 16일 새벽, 윤동주는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숨을 거뒀다.

6개월 후인 1945년 8월 15일 광복.

“만약 6개월만 더 살았다면…”

그는 해방된 조국에서 시를 계속 썼을 것이다. 30대, 40대, 50대… 더 많은 시를 남겼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에 “만약”은 없다.


📝 제2전시실 –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2층 전시실엔 윤동주 자필 시집이 전시되어 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윤동주는 1941년 연희전문 재학 중, 자신이 쓴 시 19편을 손으로 써서 시집을 만들었다. 총 3부를 만들어:

  • 1부: 자신이 보관
  • 2부: 후배 정병욱에게
  • 3부: 친구에게

하지만 출판은 못 했다. 일제 검열 때문.

1948년, 정병욱이 윤동주 사망 3년 후에 처음 출판.

유리 케이스 안에 있는 자필 시집. 펜으로 꾹꾹 눌러쓴 한글.

“이 친구, 자기 시가 100년 후에도 읽힐 줄 알았을까?”


🪟 제3전시실 – 물탱크 내부

3층은 옛 물탱크 내부를 그대로 보존했다.

콘크리트 원통형 벽, 천장에 둥근 구멍 (옛 물 주입구).

벽면에 윤동주 시 전문이 프로젝션 맵핑으로 투영된다.

**“별 헤는 밤”**이 흘러나왔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물탱크 안에서 시를 듣는데, 울컥했다.

“27세에 청춘이 끝난 시인.”


4부: 인왕산 자락 산책 – 윤동주가 걸었을 길

🥾 문학관 → 인왕산 둘레길

문학관을 나와 인왕산 둘레길을 걸었다.

문학관 뒤편으로 이어지는 산책로. 윤동주 시인의 산책길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중간중간 시비가 세워져 있다.


📜 윤동주 시비 (인왕산 코스)

1. “서시” 시비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2. “길” 시비

잃어버렸습니다.
무엇을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3. “참회록” 시비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 인왕산 정상까지는 안 갔다

산책로는 인왕산 정상까지 이어지지만, 60대 체력으론 무리.

중간 전망대까지만 갔다.

서울 시내가 한눈에. 경복궁, 청와대, 광화문, 남산타워…

“윤동주가 1941년 이 자리에 섰다면 뭘 봤을까?”

경복궁 너머 조선총독부 건물. 일장기 펄럭이는 광화문. 일본군 행진.

“그 풍경을 보며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 없기를’이라고 썼구나.”

윤동주

5부: 실용 정보 – 연세대 + 윤동주문학관 당일치기 코스

🗺️ 추천 일정 (4~5시간 코스)

시간일정
10:00신촌역 2번 출구 → 연세대 정문
10:20스팀슨관 외관 관람
10:40시인의 언덕 (윤동주 시비)
11:30연세대 후문 → 청운동 도보 이동
12:00윤동주문학관 관람 (1시간)
13:00인왕산 둘레길 산책 (30분)
13:40청운동 카페 (서촌 카페거리)
15:00경복궁역 or 광화문역으로 이동

🚇 교통편

출발: 신촌역

  • 지하철 2호선 신촌역 2번 출구
  • 연세대 정문까지 도보 10분

연세대 → 윤동주문학관

  • 도보: 후문 → 청운동 (20분, 경사 있음)
  • 버스: 연세대 앞 7212번 → 청운초등학교 하차 (10분)

윤동주문학관 → 시내 복귀

  • 도보로 경복궁역 (15분)
  • 또는 버스 7212번 → 광화문

💰 예산 (1인 기준)

항목금액
지하철 (왕복)2,800원
연세대 입장무료
윤동주문학관 입장무료
점심 (신촌 or 서촌)10,000원
카페 (서촌)5,000원
합계약 17,800원

경로 우대 혜택: 지하철 무료 (만 65세 이상)


🍽️ 식사 추천

신촌 (연세대 근처)

  • 연대 앞 할머니 국밥: 8,000원, 60년 전통
  • 신촌 설렁탕: 10,000원
  • 연세 우유: 연세대 정문 앞 편의점, 2,000원 (기념품)

서촌 (윤동주문학관 근처)

  • 대오식당: 한정식 15,000원
  • 청운동 분식: 떡볶이 5,000원
  • 통인시장 도시락 카페: 기름떡볶이 유명

☕ 카페 추천 (서촌)

  • 사루비아다방: 1970년대 인테리어, 아메리카노 5,000원
  • 대오서점: 책방 겸 카페
  • 청운동 북카페: 조용한 독서 공간

6부: 60대가 본 윤동주의 의미 – 부끄러움을 아는 용기

시인의 언덕을 내려오며 생각했다.

“윤동주는 왜 ‘부끄럽다’고 했을까?”

독립운동을 못 한 게 부끄러워서? 창씨개명을 한 게 부끄러워서? 일본 유학을 간 게 부끄러워서?

아니다.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아는 것 자체가 양심이다.

1941년 조선. 대부분 사람들은:

  • 창씨개명하고 일본식으로 살았다
  • 징병·징용 가서 일본을 위해 싸웠다
  • 친일 행위를 하고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윤동주는 **“나는 부끄럽다”**고 시를 썼다.

그 부끄러움이 일제를 자극했고, 그래서 체포됐고, 그래서 옥사했다.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용기다.


60대가 된 나도 부끄러운 순간이 많다.

30대엔 돈만 쫓았고, 40대엔 출세만 생각했고, 50대엔 자식 걱정뿐이었다. 정작 내 인생은 뭐였나?

은퇴하고 나서야 블로그 시작했고, 문학 여행 다니며 작가들 만나고 있다.

“이제라도 부끄럽지 않게 살아보자.”

윤동주가 가르쳐준 것.


에필로그: 다음편 예고 – 서대문형무소에서 윤동주를 애도하다

연세대와 윤동주문학관을 다녀온 다음 날.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동주가 일본에서 체포된 후, 서울로 압송되어 서대문형무소를 거쳤다는 기록이 있다. (정확한 기록은 불분명하지만, 당시 독립운동가들은 대부분 서대문형무소를 거쳤다.)

그리고 서대문형무소엔 유관순, 안중근, 김구, 윤봉길 등 독립운동가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윤동주도 이 감옥에서 고통받았을 것이다.”

다음 편에서는:

  • 서대문형무소역사관 관람
  • 독립운동가들의 옥사 이야기
  • 윤동주와 유관순, 같은 시대 다른 저항

윤동주 시리즈 2편 – 서대문형무소편으로 계속됩니다.


#태그

#윤동주 #연세대시인의언덕 #윤동주문학관 #서시 #별헤는밤 #자화상 #청운동 #인왕산 #60대혼자여행 #서울문학기행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애드센스승인 #문학여행


[참고 자료]

  • 윤동주문학관 공식 홈페이지
  • 연세대학교 역사 아카이브
  • 윤동주 전집 (민음사)
  • 윤동주 평전 「슬픈 예감」 (송우혜 저)

김유정 역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