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날개』 – 카페 음식: 모더니즘 서울의 맛과 무위(無爲) 상 (1910-1937)은 한국 근대문학에서 가장 난해하고, 가장 현대적이며, 가장 비극적인 작가다.
특히 그의 대표작 『날개』(1936)는 한국 문학에서 의식의 흐름 기법을 가장 정교하게 활용한 작품이다.
이상, 그리고 카페라는 근대 공간
이 소설은 전통적 서사 구조를 거부하고, 주인공의 내적 독백과 감각의 편린들로만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속에서 ‘카페’라는 공간이 무한히 반복되고, ‘음식’이 끊임없이 언급된다.
서울이 근대 도시로 변모하던 1930년대, 카페는 신식 문화의 상징이었다. 조선의 전통 사회에서는 없던 공간이 갑자기 나타났다.
여기서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고, 케이크를 먹고, 이성을 만나고, 세상을 논하고,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을 재구성했다. 카페는 상류층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학생, 예술가, 지식인, 그리고 무직 상태의 지식인들도 모였다. 당시의 신문과 잡지들을 보면, 카페의 문화는 매우 다층적이었다.
이상의 『날개』에서 카페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그것은 주인공의 정신 상태를 표현하는 무대이자, 근대 서울의 허구성을 드러내는 장치다.
주인공은 카페에 자주 간다. 그리고 거기서 그는 자신을 상실하고, 자신을 재발견하려 애쓴다.
『날개』 속 카페와 음식
『날개』를 다시 펼쳐 보자. 소설은 주인공 ‘나’의 내적 독백으로 가득하다. 나는 아내의 돈으로 산다. 아내는 매춘을 하고, 나는 그것을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척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나는 끊임없이 카페를 간다. 거기서 나는 무엇을 하는가? 커피를 마시고, 케이크를 먹고, 여자들을 보고, 그리고 자신의 무위함을 사유한다.
소설 속에서 명시적으로 언급되는 음식은 많지 않다. 하지만 그 부재 자체가 의미를 가진다. 주인공이 먹는 음식들은 대부분 카페의 음식이다.
커피, 케이크, 빵, 그리고 가끔 치즈 같은 것들. 이들은 모두 ‘외국 것’이자 ‘상류층의 것’이면서도, 동시에 당시의 보통 지식인이 접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이것은 근대 한반도의 계급 구조와 문화를 여실히 보여준다.
더 중요한 것은, 주인공이 이 음식들을 ‘의식적으로’ 먹는다는 점이다. 그는 음식을 먹으면서 자신이 음식을 먹고 있다는 것을 인식한다.
이것은 매우 모더니즘적인 태도다. 전근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배고프면 먹는다. 하지만 근대인은 먹는 행위 자체를 성찰한다.
자신이 왜 먹는지, 무엇을 먹는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질문한다. 이상의 주인공은 바로 그런 근대인이다.
1930년대 서울 카페의 실제 모습
이상이 『날개』를 쓸 당시, 서울의 카페는 어떤 곳이었을까? 역사 자료들을 보면, 당시 서울의 카페는 몇 가지 층이 있었다.
상류층 카페: 명동, 종로 일대의 고급 카페들. 여기서는 수입 커피와 양과자가 제공되었다. 가격이 매우 비싸서, 일반 회사원의 하루 급여 정도가 커피 한 잔의 가격이었다.
중류층 카페: 대학가나 문화 중심지 근처의 카페. 여기서는 국내산 커피와 국내 제과점의 빵과 케이크가 팔렸다. 가격은 상류층 카페보다 저렴했지만, 여전히 일반 노동자에게는 사치였다.
허름한 카페: 혼재된 지역의 작은 카페들. 여기서는 대나무통에 우린 커피를 팔기도 했다. 가격은 저렴했지만, 환경은 좋지 않았다.
이상의 글들로 봐서는, 주인공이 자주 가는 카페는 아마도 두 번째 범주에 속했을 것 같다.
서울의 ‘문화인’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기에는 충분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류층의 일원이 되기에는 부족한 공간. 정확히 주인공의 정체성과 일치한다.
1930년대 서울 카페 음식의 종류
커피
당시의 커피는 여러 방식으로 준비되었다. 가장 고급스러운 방식은 유럽식 에스프레소 머신을 사용하는 것이었는데, 이것을 갖춘 카페는 많지 않았다.
일반적으로는 핸드드립이나 터키식 커피 방식을 사용했다. 혹은 커피를 우린 물에 설탕을 넣고, 때로는 응축 우유나 신선한 우유를 더해서 제공했다.
당시의 커피는 오늘날의 우리가 생각하는 커피의 맛이 아니었을 것이다. 더 탁하고, 더 쓸 가능성이 높다.
케이크와 빵
이상이 살던 시대, 서울에서 팔리는 서양식 케이크는 대부분 일본식 카페나 제과점에서 수입되었거나, 거기서 배운 기술로 만들어졌다.
스펀지 케이크, 초콜릿 케이크, 과일이 올려진 케이크 등이 있었다. 또한 단순한 빵들도 있었다. 우리가 오늘날 ‘식빵’이라고 부르는 white bread, 그리고 크림이나 팥을 넣은 빵들.
기타 음식
치즈, 버터, 초콜릿, 그리고 가끔은 샌드위치 같은 것들도 팔렸다. 이들은 모두 당시로는 ‘외국 음식’이었고, ‘지식인의 음식’이었다.
이상의 카페 모더니즘: 문학적 의미
『날개』에서 카페는 왜 반복되는가? 그것은 주인공의 무위(無爲)를 드러내기 위함이다. 주인공은 일을 하지 않는다. 그는 아내의 돈으로 산다.
그리고 자신이 ‘기생’임을 알면서도, 그것을 직시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카페로 간다. 거기서 그는 자신이 ‘지식인’임을 연기한다. 커피를 마시고, 책을 보는 척하고, 세상을 논하는 척한다.
이것은 매우 비판적인 자아 성찰이다. 이상은 자신의 주인공—그리고 자신 자신—을 무거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근대의 지식인이란 무엇인가? 실질적 생산성이 없으면서도 정신적 우월감을 가지고 있는 존재가 아닌가?
카페의 음식을 먹으면서 주인공이 느끼는 것은, 그것이 자신의 삶과 얼마나 부조화적인지이다. 그것은 비현실적이고, 허구적이다. 마치 자신의 삶 전체가 그러하듯이.
1930년대 서울 카페 풍경 재현: 음식으로 문학을 읽기
이제 우리가 1930년대 서울 카페의 음식을 현대에 재현해보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 정확한 복원보다는, ‘이상이 경험했을 법한’ 카페 음식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당시식 커피
1930년대 카페의 커피는 깊은 로스팅의 원두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현대 기준으로는 과도하게 로스팅된 것이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여러 번 우려서 마시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고, 또한 신선한 원두를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준비 방식: 깊게 볶은 원두 15그램을 핸드드립으로 준비한다. 뜨거운 물 200밀리리터를 천천히 부어서 3-4분에 걸쳐 추출한다. 마시기 전에 설탕을 한두 숟가락 넣는다.
우유가 있다면 소량을 더한다(당시에는 응축 우유가 일반적이었을 것이다). 현대의 까페라떼나 아메리카노가 아니라, 더 이상한 맛의 음료가 만들어질 것이다. 그것이 정답이다.
스펀지 케이크
당시 서울 카페의 케이크는 대부분 매우 단순했다. 계란, 설탕, 밀가루, 그리고 기름. 여기에 가능하면 베이킹파우더를 넣었다.
재료: 계란 4개, 설탕 100그램, 밀가루 100그램, 식용유 50밀리리터, 우유 50밀리리터, 베이킹파우더 1티스푼, 바닐라 향료(선택)
만드는 과정:
계란의 흰자와 노른자를 분리한다. 노른자에 설탕의 절반을 넣고 섞는다. 여기에 밀가루를 체쳐서 넣고, 우유와 식용유를 섞어서 넣는다. 흰자는 따로 볼에서 거품을 낸다.
이때 남은 설탕을 조금씩 넣으면서 단단한 메레그를 만든다. 노른자 혼합액에 메레그를 섞어서 넣는다(이 과정에서 거품을 최대한 살려야 한다).
180도 오븐에서 약 30분간 굽는다. 완성된 케이크는 식힌 후 설탕 가루를 뿌린다.
당시의 케이크는 장식이 거의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현대에 보는 크림이나 과일로 장식된 케이크는 더 나중의 산물이다. 1930년대는 더 단순했다.
크림빵 또는 잼빵
당시 카페에서 팔리던 또 다른 음식은 크림빵이나 잼빵이었다. 이것들은 식빵과 같은 반죽에 크림이나 팥, 혹은 잼을 채운 것이었다.
기본 빵 반죽: 밀가루 300그램, 설탕 30그램, 소금 5그램, 버터 30그램, 계란 1개, 물 150밀리리터, 이스트 5그램
만드는 과정:
이스트, 따뜻한 물, 설탕을 섞어서 약 10분 휴지시켜 이스트를 활성화한다. 밀가루와 소금을 섞은 후, 이스트 혼합액을 넣는다. 계란을 풀어서 넣고, 반죽을 치댄다.
약 10분간 치대면 반죽이 완성된다. 버터를 넣고, 다시 약 5분 정도 치댄다. 1차 발효 약 1시간. 반죽이 두 배가 되면, 작은 공 모양으로 나눈다(약 8-10개).
각각을 동그랗게 만들고, 크림이나 팥 소를 채운다. 2차 발효 약 30분. 180도 오븐에서 약 15분간 굽는다.
당시의 크림은 우리가 생각하는 생크림이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도 버터 크림에 더 가까웠을 것이다. 혹은 단순한 연유(응축 우유)였을 수도 있다.
카페에서의 경험: 이상의 관점으로
이제 당신은 1930년대 서울 카페의 음식을 먹고 있다. 깊게 로스팅되고 약간 쓴 커피, 단순하고 푸석한 스펀지 케이크, 그리고 달콤한 크림빵. 이것들을 먹으면서 『날개』의 주인공처럼 생각해보자.
당신은 이 카페에 왜 왔는가? 배고파서? 아니다. 당신은 사실 충분한 돈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신은 여기 있다.
그리고 당신은 이 음식을 먹으면서, 자신이 ‘교양 있는 사람’임을 증명하려 한다. 커피는 상류층의 음료다. 케이크는 외국 문화의 상징이다.
이런 것들을 소비하는 행위 자체가 당신을 특정한 계급으로 배치한다.
하지만 이 음식의 맛은 어떤가? 정직하지 않다. 약간 이상하고, 약간 낯설고, 약간 불편하다. 마치 당신의 삶 전체처럼. 당신은 이 음식을 사랑하는가?
아니면 단지 그것을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이것이 이상이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이상과 모더니즘: 음식을 통한 이해
『날개』는 가장 난해한 한국 소설 중 하나다. 많은 독자들이 이 소설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철학책을 찾아본다.
하지만 당신이 실제로 1930년대 카페의 음식을 먹으면서 이 소설을 다시 읽는다면, 당신은 더욱 깊은 이해에 도달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상은 추상적으로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구체적이다. 주인공이 무엇을 먹는지, 어디서 먹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떤 심정으로 먹는지.
이런 세부들이 모두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당신이 그 음식을 직접 먹어볼 때, 당신은 이상의 모더니즘적 감각에 한발 더 가까워진다.
결론: 부재의 미학
흥미롭게도, 『날개』는 ‘음식의 부재’로도 읽힐 수 있다. 주인공이 먹는 것들은 대부분 형식적이고 외형적이다. 영양가 있는 음식이 아니다.
카페의 음식은 배를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즉, 주인공은 ‘먹는’ 것이 아니라 ‘소비하는’ 것이다. 그리고 현대의 우리도 그렇지 않은가?
이상의 카페 음식 재현은, 단순한 요리 재현이 아니다. 그것은 근대인의 정체성 위기를 감각적으로 경험하는 행위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문학과 음식이 만날 때의 가장 깊은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