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운 2편 – 서대문형무소 8호 감방, 독립선언서가 울린 곳
“대한 독립 만세!”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탑골공원. 33명의 민족대표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한용운은 그 중 한 명이었다. 40세. 가장 젊었다.
그날 밤, 한용운은 체포됐다. 서대문형무소로 끌려갔다. 3년형을 선고받았다.
프롤로그: 1919년 3월 1일, 그들은 갔다
2026년 1월, 나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 섰다. 독립문역 5번 출구에서 나와 5분을 걸었다. 붉은 벽돌 건물. 1908년 일제가 독립운동가를 가두기 위해 지은 감옥.
오늘 나는 한용운이 갇혔던 8호 감방을 찾아간다.
1부: 서대문형무소역사관 – 독립운동가의 감옥
기본 정보
- 주소: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통일로 251 (현저동 101)
- 운영시간:
- 3~10월: 09:30~18:00
- 11~2월: 09:30~17:00
- 휴관: 매주 월요일 / 1월 1일
- 입장료:
- 일반 3,000원
- 청소년·군인 1,500원
- 어린이 1,000원
- 경로우대(만 65세 이상): 무료
- 소요시간: 2~3시간
- 주차: 유료 (30분 1,500원)
- 접근: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5번 출구 도보 5분
- 전화: 02-360-8590
- 공식: https://www.sscmc.or.kr
방문 리포트: 1919년 3월 5일, 한용운 수감
매표소에서 경로우대 신분증을 보이고 무료 입장했다. 입구를 들어서자 넓은 광장이 나왔다. 붉은 벽돌 건물들이 사방에 둘러서 있었다.
서대문형무소 역사:
- 1908년 10월: ‘경성감옥’으로 개소
- 1912년: ‘서대문감옥’으로 개명
- 1923년: ‘서대문형무소’로 개명
- 1945년 광복 이후: ‘서울구치소’로 사용
- 1987년: 경기도 의왕으로 이전
- 1998년: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개관
광장 중앙에 추모비가 서 있었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이 수감되어 고문당하고 순국한 민족 수난의 현장입니다.”
나는 추모비 앞에서 묵념했다. 한용운뿐 아니라 유관순, 김구, 안창호, 이봉창, 윤봉길…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뜨거운 독립운동가들이 이곳에 갇혔다.
2부: 옥사 – 한용운이 갇힌 8호 감방
8호 감방 찾기
광장을 가로질러 옥사 건물로 들어갔다. 붉은 벽돌 복도. 양쪽으로 작은 철문들이 줄지어 있었다. 감방이었다.
옥사 구조:
- 1층: 1~10호 감방 (일반 수감자)
- 2층: 11~20호 감방 (독립운동가 중심)
- 지하: 고문실, 사형장
나는 1층 복도를 천천히 걸었다. 각 감방마다 번호판이 붙어 있었다.
1호, 2호, 3호…
8호.
멈췄다.
철문 위에 작은 안내판이 붙어 있었다.
8호 감방
수감자: 한용운(韓龍雲), 1879~1944
법명: 만해(萬海)
수감 기간: 1919년 3월 5일 ~ 1922년 11월 (3년 8개월)
죄목: 보안법 위반 (3·1운동 주도)
철문 창살 너머를 들여다봤다.
2평 남짓한 작은 방. 시멘트 바닥. 한쪽 구석에 변기 하나. 작은 창문 하나. 햇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한용운은 이 방에서 3년 8개월을 살았다.
감방 내부:
- 크기: 약 2평 (3.3㎡)
- 수용 인원: 1인 독방
- 설비: 변기 1개, 창문 1개 (작은 창살)
- 침구: 얇은 요 1장, 담요 1장 (겨울에만 지급)
- 식사: 하루 2회 (보리밥, 된장국)
나는 철문 앞에 쪼그려 앉았다. 2평. 내 원룸 화장실보다 작았다.
한용운은 이 좁은 방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3부: 역사전시관 – 한용운의 독립선언서
옥사를 나와 역사전시관으로 들어갔다. 2층 건물. 1층은 일제강점기 역사, 2층은 독립운동가 개인 전시.
1층 전시실: 3·1운동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거대한 벽면 사진이었다.
1919년 3월 1일, 탑골공원.
수만 명의 사람들이 손을 들고 있었다. “대한독립만세!” 외치는 모습.
사진 옆에 독립선언서 원문이 전시돼 있었다.
“吾等은 玆에 我 朝鮮의 獨立國임과 朝鮮人의 自主民임을 宣言하노라…”
(우리는 이에 우리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이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독립선언서는 한용운이 직접 작성에 참여했다. 최남선이 초안을 쓰고, 한용운이 수정했다.
한용운이 수정한 부분:
- “요구하노라” → “선언하노라” 로 수정
- 이유: “독립은 일본에게 요구할 게 아니라, 우리가 선언하는 것이다.”
나는 이 대목에서 전율했다. 한용운의 자존심이 느껴졌다. 빼앗긴 나라를 ‘요구’가 아니라 ‘선언’으로 되찾겠다는.
2층 전시실: 민족대표 33인
2층에 올라가자 33명의 사진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민족대표 33인 명단:
- 손병희 (천도교)
- 한용운 (불교)
- 이승훈 (기독교)
… - 백용성 (불교)
한용운의 사진이 있었다. 40세 때 모습. 승려복을 입고 있었다. 눈빛이 날카로웠다.
사진 아래 설명문:
“한용운(1879~1944)은 민족대표 33인 중 최연소였다. 3·1운동 당시 40세. 독립선언서 낭독 후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다. 3년형을 선고받았으나, 옥중에서도 독립운동을 계속했다. 1922년 출옥 후 『님의 침묵』을 집필했다.”
4부: 지하 고문실 – 독립운동가의 고통
역사전시관을 나와 다시 옥사 건물로 돌아왔다. 이번엔 지하로 내려갔다.
계단을 내려가는데 서늘한 기운이 올라왔다. 지하는 어두웠다. 형광등 몇 개가 희미하게 복도를 밝히고 있었다.
지하 시설:
- 취조실: 독립운동가 심문 장소
- 고문실: 물고문, 전기고문 등
- 사형장: 사형수 처형 장소
고문실
철문을 열고 들어갔다. 약 10평 크기의 방. 중앙에 나무 의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의자 팔걸이에 쇠사슬이 달려 있었다.
안내판:
“이 의자에 독립운동가를 앉힌 뒤 쇠사슬로 묶고 고문했다. 주요 고문 방법은 물고문, 전기고문, 손톱 밑에 대나무 찌르기 등.”
나는 의자 앞에 한참 섰다. 한용운도 이 고문을 받았을까?
기록에 따르면 한용운은 고문을 받았다. 그러나 끝까지 독립운동 동지들의 이름을 대지 않았다.
사형장
고문실을 나와 복도 끝으로 갔다. 작은 방. 사형장이었다.
천장에 교수대가 있었다. 줄이 매달려 있었다.
안내판:
“1923~1945년 사이 이곳에서 독립운동가 수백 명이 사형당했다. 대표적 인물: 이봉창, 윤봉길, 김좌진 등.”
나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지하를 빠져나왔다. 햇빛이 너무 밝았다. 눈이 부셨다.
5부: 탑골공원 – 독립선언서가 낭독된 그곳
서대문형무소를 나와 지하철 3호선을 탔다. 종각역에서 내렸다. 도보 5분, 탑골공원에 도착했다.
탑골공원 기본 정보
-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2가 탑골공원
- 입장료: 무료
- 개방 시간: 06:00~22:00
- 역사: 1897년 한국 최초의 근대식 공원 (구 파고다공원)
3·1운동 기념탑
공원 중앙에 높은 탑이 서 있었다. 3·1운동 기념탑이었다.
탑 아래에 동판이 있었다.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이곳에서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수만 명의 시민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나는 동판 앞에 섰다. 107년 전, 바로 이 자리에서 한용운이 서 있었다.
3·1운동 당일 일정:
- 오후 2시: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서 낭독 예정
- 실제: 민족대표 33인은 탑골공원 대신 인사동 태화관(음식점)에서 선언서 낭독
- 이유: 학생·시민이 너무 많이 모여 일본 경찰과 충돌 우려
- 결과: 탑골공원에서는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만세 시위, 민족대표는 태화관에서 낭독 후 자진 출두
나는 공원 벤치에 앉아 『님의 침묵』을 펼쳤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1926년 출판. 한용운이 감옥에서 나온 지 4년 뒤.
“님”은 조국이었을까? 한용운은 감옥에서 3년 8개월을 보냈다. 그 시간 동안 ‘님’을 그리워했을 것이다. 빼앗긴 조국을.
6부: 1박2일 서울 문학 여행 (한용운 + 윤동주 연계 코스)
| 일정 | 시간 | 장소 | 활동 | 비용 |
|---|---|---|---|---|
| Day 1 | 10:00 | 심우장 (성북동) | 한용운 생가 관람 | 무료 |
| 11:00 | 윤동주문학관 | 도보 15분 이동 | 무료 | |
| 12:30 | 성북동 한정식 | 점심 | 15,000원 | |
| 14:00 | 서대문형무소역사관 | 8호 감방 관람 | 무료(경로) | |
| 16:30 | 탑골공원 | 3·1운동 기념탑 | 무료 | |
| 18:00 | 인사동 저녁 | 한정식 | 18,000원 | |
| 20:00 | 숙소 체크인 | 종로 게스트하우스 | 40,000원 | |
| Day 2 | 09:00 | 경복궁 | 아침 산책 | 무료(경로) |
| 10:30 | 국립한글박물관 | 한용운 전시 | 무료 | |
| 12:00 | 광화문 점심 | 육개장 | 12,000원 | |
| 14:00 | 교보문고 | 『님의 침묵』 구입 | 12,000원 | |
| 15:30 | 귀가 | – | – |
총 예산: 약 97,000원 (경로 우대 적용)
7부: 60대 혼자 여행 꿀팁
- 경로우대: 서대문형무소 무료 입장 (신분증 필수)
- 관람 순서: 심우장 → 윤동주문학관 → 서대문형무소 → 탑골공원
- 소요 시간: 서대문형무소 2~3시간 필수 (천천히 관람)
- 체력 안배: 지하 사형장까지 보면 정신적으로 힘듦, 휴식 필수
- 점심 추천: 서대문형무소 근처 ‘독립문 설렁탕’ (1인 12,000원)
- 연계 코스: 윤동주문학관 (성북동), 이태준 가옥 (성북동)
- 책 준비: 『님의 침묵』 + 『한용운 평전』 미리 읽고 가기
- 다음 편 예고: 3편에서 한용운 vs 윤동주 vs 이육사 저항시인 비교
에필로그: 감방에서 핀 시
서대문형무소를 나서며 나는 다시 8호 감방을 떠올렸다. 2평. 한용운은 그 좁은 공간에서 3년 8개월을 살았다.
그는 그곳에서 시를 썼을까?
기록에 따르면 한용운은 감옥에서 시를 쓰지 못했다. 종이도, 연필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는 머릿속으로만 시를 지었다.
1922년 출옥 후, 한용운은 기억 속의 시들을 종이에 옮겼다. 그렇게 『님의 침묵』이 태어났다.
“아아, 님은 갔지만은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감옥에서 나온 한용운은 조국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음을 알았다. “님”은 여전히 갔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2026년 1월, 나는 독립문역 계단을 올랐다. 주머니 속 『님의 침묵』이 무거웠다. 그러나 따뜻했다.
다음 편 예고:
한용운 3편 – 저항시인 3인방: 한용운 vs 윤동주 vs 이육사
참고 자료
-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안내 책자
- 한용운 『님의 침묵』 민음사
- 『한용운 평전』, 김삼웅 저
- 탑골공원 3·1운동 기념탑 안내문
해시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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