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바돌로뮤 – 서울에는 수없이 많은 여행 코스가 있다.
하지만 지도를 펼쳐도 잘 보이지 않는 동네가 있다.
관광지는 아니지만, 누군가에게는 오랫동안 사유의 공간이었던 곳.
성북동은 그런 동네다.
나는 이 동네를 걷게 된 계기가 조금 특별했다.
한국 문학을 연구하며 오랫동안 서울에 머물렀던 외국인 연구자이자 번역가, 피터 바돌로뮤(Peter Bartholomew)의 글을 읽고 난 뒤였다.
그는 한국 문학을 “번역해야 할 텍스트”가 아니라,
살아 있는 장소와 함께 호흡해야 하는 언어라고 말했던 사람이다.
관광지가 아닌 곳에 피터 바돌로뮤 머문 이유
성북동은 조용하다.
카페 거리도 아니고, 유명한 시장도 없다.
대신 오래된 주택과 낮은 담장, 천천히 흐르는 골목이 있다.
피터 바돌로뮤가 이 동네를 좋아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그는 한국 문학을 연구하면서, 작가들이 왜 특정 공간에서 특정 문장을 쓰게 되었는지를 중요하게 봤다.
성북동은 그 질문에 가장 솔직하게 답해주는 장소였다.
나는 실제로 이 동네를 걸으면서
“여기서라면 긴 문장이 나올 수밖에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 소리가 멀고, 사람의 발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곳에서는
생각도 자연스럽게 길어진다.
피터 바돌로뮤의 시선으로 바라본 한국어 리듬

피터 바돌로뮤는 한국어를 단순히 구조로 분석하지 않았다.
그는 리듬을 이야기했다.
문장이 만들어지는 속도, 단어와 단어 사이의 숨.
성북동 골목을 걷다 보면 그 말이 이해된다.
이 동네에서는 걷는 속도가 자동으로 느려진다.
그리고 느려진 속도는 생각의 결을 바꾼다.
나는 골목 끝 작은 언덕에 서서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주변 소리를 듣고, 지나가는 사람을 바라봤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번역이란, 결국 이런 침묵의 시간을 다른 언어로 옮기는 일이 아닐까.”
이건 여행 정보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감각이다.
이런 감각이 쌓일 때, 문학 여행은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성북동에서 느낀 ‘외국 작가의 거리감’
외국 작가가 한국에서 문학 활동을 한다는 건
언제나 완전한 이방인도, 완전한 내부자도 아닌 상태로 살아간다는 뜻이다.
피터 바돌로뮤는 그 중간 지점에 오래 머물렀다.
성북동은 그런 사람에게 가장 적합한 동네였다.
너무 중심도 아니고, 너무 외곽도 아닌 위치.
늘 한 발 물러서서 서울을 바라볼 수 있는 거리.
나는 그가 왜 이 동네를 산책하며 사유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이곳에서는 한국을 설명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그저 한국이 흘러가도록 두면 된다.
한 외국 작가의 흔적을 따라 걷는다는 것
피터 바돌로뮤의 이름은
대중적으로 유명하지 않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중요하다.
이 블로그는
“다들 쓰는 여행지”가 아니라
‘왜 이 사람이 이곳을 사랑했는가’를 묻는 여행을 한다.
성북동에서의 하루는 화려하지 않았다.
사진도 많이 찍지 않았다.
대신 오래 남았다.
- 성북구 문화·문학 관련 공식 정보
https://www.sb.go.kr - 한국문학에 영향을 미친 외국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