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타샤를 찾아서 – 길상사에서 만난 백석의 연인

타샤를 찾아서 – 길상사에서 만난 백석의 연인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첫 구절입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이 시의 주인공 ‘나타샤’는 누구였을까요?

프롤로그: “나타샤, 당신은 참 아름다웠다”

그녀의 본명은 김영한(金英翰), 기생 출신으로 백석보다 7살 연상이었습니다. 1930년대 함흥에서 백석을 만나 평생의 사랑을 약속했지만, 분단과 이념으로 두 사람은 영원히 헤어지게 됩니다.

2024년 12월, 저는 서울 성북구 길상사로 향했습니다. 김영한이 만년에 세운 이 절에서, 60년 전 헤어진 연인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1부: 길상사, 백석의 사랑이 잠든 곳

서울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3번 출구로 나와 마을버스 02번을 타고 10분. 성북동 주택가를 지나자 고즈넉한 절이 나타났습니다.

길상사 (吉祥寺)

  • 주소: 서울 성북구 선잠로5길 68
  • 입장료: 무료 (자유 참배)
  • 주차: 협소 (대중교통 추천)
  • 개방시간: 오전 9시~오후 5시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왼쪽에 법우 김영한 보살 추모비가 보입니다.

“대원각 터를 시주하여 길상사를 세우신 분”

이 한 줄의 비문 뒤에는 파란만장한 인생이 숨어있습니다.


2부: 기생 자야, 그리고 나타샤를 찾아서

1930년대 함흥 – 운명적 만남

백석은 1935년부터 1937년까지 함흥 영생고보에서 영어교사로 근무했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김영한(기생명 ‘자야’)은 당대 최고의 미모와 교양을 갖춘 기생이었죠.

명문가 도련님과 기생의 사랑. 백석의 집안은 당연히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백석은 그녀를 ‘나타샤’라는 러시아식 이름으로 부르며 평생의 사랑을 시로 남겼습니다.

“나타샤, 우리는 같이 눈이 나리는 밤에” “산골로 가자” “토끼를 기르자”

이 시는 단순한 낭만이 아니라, 세상의 편견을 피해 둘만의 세계로 도망가고 싶다는 절박한 외침이었습니다.


3부: 분단, 그리고 60년의 기다림

1945년 해방, 비극의 시작

백석의 고향 정주는 북한 땅이 됩니다. 김영한은 서울에 남았고, 백석은 북으로 갔습니다. (정확히는 고향에 계속 머물렀던 것)

두 사람은 다시 만나지 못했습니다.

김영한의 서울 생활

그녀는 서울에서 ‘대원각’이라는 고급 요정을 운영하며 거부가 됩니다. 하지만 평생 백석을 잊지 못했다고 합니다.

1990년대, 그녀는 법정 스님을 만나 불교에 귀의합니다. 그리고 1995년, 400억 원 상당의 대원각 터를 조계종에 시주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땅에 부처님 오실 집을 짓고 싶습니다”

1997년, 길상사가 개원했습니다. 김영한은 2004년 91세로 입적했고, 백석은 1996년 북한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두 사람은 끝내 만나지 못했지만, 그녀가 세운 이 절에는 백석의 시비(詩碑)가 세워져 있습니다.


4부: 길상사 산책 – 백석의 시를 따라서

[입구 연못] 작은 연못에 잉어들이 헤엄칩니다. 겨울이라 연꽃은 없지만, 고요한 수면에 하늘이 비칩니다.

[대웅전 가는 길] 돌계단을 오르며 백석의 시 ‘수라’를 떠올립니다.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따른 집” “할멈이 혼자 살었다”

길상사도 성북동 산모퉁이 외따른 곳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김영한도 만년에는 이 조용한 절에서 혼자 백석을 그리워했겠죠.

[극락전 뒤 백석 시비]

극락전 뒤편 숲길에 백석의 시비가 있습니다.

“나는 이제 너무나 오랫동안” “흰 밥을 먹지 않았다” (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중)

북한에서 굶주렸을 백석을 생각하며, 김영한이 이 시를 새긴 것이 아닐까요?

[법우 김영한 추모 공간]

작은 전각에 김영한 보살의 영정과 유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사진 속 그녀는 1930년대 미인의 면모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백석 선생과의 인연은 말하지 않으셨지만, 말년까지 그분의 시집을 가까이 두셨다고 합니다.” (안내 스님의 말씀)


5부: 성북동 문학 산책

길상사를 나와 성북동 일대를 걸었습니다. 이 동네는 백석뿐 아니라 많은 문인들이 살았던 문학의 고장입니다.

[정릉천 산책로]

  • 길상사에서 도보 10분
  • 총 길이: 약 2km
  • 난이도: 쉬움 (평지)

겨울 정릉천은 백석의 시처럼 쓸쓸하면서도 아름답습니다.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2024년에도 여전히 눈은 내리고, 저는 나타샤를 생각합니다.

[만해 한용운 심우장]

  • 길상사에서 도보 15분
  • 입장료: 무료
  • 휴관: 월요일

백석과 동시대를 살았던 한용운 시인의 집입니다. 두 사람 모두 일제강점기와 분단의 비극을 겪었죠.

[성북선잠박물관 카페]

  • 주소: 성북구 성북로 96
  • 운영: 오전 10시~오후 6시

산책 후 따뜻한 차 한 잔. 60대의 무릎에는 이 정도 휴식이 꼭 필요합니다.


6부: 국립한국문학관에서 백석을 다시 만나다

[은평구 진관동 문학관]

  • 주소: 서울 은평구 연서로 528
  • 입장료: 무료
  • 휴관: 월요일
  • 주차: 무료

길상사에서 지하철로 1시간 거리. 2023년 개관한 국립한국문학관은 한국 문학의 모든 것을 담고 있습니다.

상설전시 중 백석 코너

1층 전시실에는 백석의 육필 원고(복제본)와 시집 『사슴』 초판본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런 날 저녁엔 차라리” “홀로 읽기엔 너무 아름다운” “옛 글을 읽으며”

문학관 열람실에서 백석 전집을 빌려 읽었습니다. 60년 전 북한으로 사라진 시인의 목소리가 2024년 서울에서 다시 들립니다.


에필로그: 나타샤를 찾아서

길상사 앞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저는 김영한의 삶을 생각했습니다.

기생으로 태어나 재벌이 되고, 만년에는 승려가 된 여인. 하지만 평생 단 한 사람, 백석만을 사랑한 여인.

그녀가 세운 길상사는 단순한 절이 아닙니다. 그것은 못 다한 사랑의 기념비이고, 분단의 비극을 증언하는 공간입니다.

백석은 북에서, 김영한은 남에서, 서로를 그리워하며 죽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나타샤, 당신은 참 아름다웠다”

2024년 겨울, 길상사에서 한 60대 블로거가 이 말을 속삭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백석의 시에 나오는 평안도 음식을 찾아 서울의 북한 음식점을 탐방하겠습니다.


🚩 여행 정보 요약

서울 성북동 1일 코스

  1. 한성대입구역 도착
  2. 길상사 참배 (2시간)
  3. 성북동 점심 (1시간)
  4. 정릉천 산책 (1시간)
  5. 만해 심우장 (30분)
  6. 국립한국문학관 (선택, 2시간)

예산

  • 교통비: 지하철 5천원
  • 식사: 1.5만원
  • 카페: 1만원
  • 합계: 3만원

추천 계절 사계절 모두 좋지만, 겨울 (눈 오는 날)이 백석 시의 정서에 가장 맞습니다.

윤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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