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 살아있다면 – 평안도 정주를 그리며 익산을 걷다

백석 살아있다면 – 평안도 정주를 그리며 익산을 걷다 백석에게는 문학관이 없습니다.

윤동주에게는 연세대 기념관이 있고, 김소월에게는 남산 문학의집이 있지만, 백석에게는 어디에도 그를 기리는 공간이 없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 그의 고향 평안북도 정주가 북한 땅이기 때문입니다.

프롤로그: 문학관 없는 시인의 슬픔

2024년, 환갑을 넘긴 제가 익산역에 내린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못 가는 북한 고향 대신, 남한에서라도 백석의 시 속 풍경을 상상해보고 싶었으니까요.

“여우난골족이라는 동리에는” “겨울밤이 왔다”

백석의 대표작 ‘여우난골족’의 첫 구절입니다. 평안도 어느 시골마을의 겨울밤 풍경을 담은 이 시를, 저는 익산 미륵사지에서 읽으려 합니다.


1부: 백석 그는 누구였나

1912년 평안북도 정주 출생 백석(본명 백기행)은 일제강점기 평안도 명문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오산학교를 거쳐 일본 도쿄 아오야마학원에서 영문학을 공부했죠.

1935-1940년 황금기 함흥 영생고보 교사를 거쳐 조선일보 출판부에 근무하며, 시집 『사슴』(1936)을 발표합니다. 이 시기 그는 정지용, 김기림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천재 시인이었습니다.

사랑 이야기 기생 출신 김영한(자야)과의 애절한 사랑. “나타샤, 당신은 참 아름다웠다”는 그 유명한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배경입니다.

1948년 이후 행방불명 해방 후 월북(정확히는 고향이 북한이 됨)한 백석은 1996년 사망했다고 추정되지만, 정확한 기록은 없습니다. 북한에서 그는 “부르주아 시인”으로 숙청당해 함경도 탄광촌에서 말년을 보냈다고 전해집니다.


2부: 익산 미륵사지에서 백석 을 만나다

2024년 12월 어느 추운 날 저는 익산역에서 버스를 타고 미륵사지로 향했습니다. 한국 최대의 백제 사찰터인 이곳은, 백석의 ‘여우난골족’이 그린 겨울 시골마을과 묘하게 닮아있었습니다.

미륵사지 석탑 앞에서

  • 주소: 전북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 입장료: 무료
  • 주차: 대형 주차장 완비

복원 중인 석탑을 바라보며 백석의 시를 소리 내어 읽었습니다.

“어느 사이엔가 또 감자를 삶아놓고” “그것을 꺼내 아버지께 갖다드리는 것을 보고” “나는 그 새로 아버지께옵서” “어느덧 그렇게 오래 주무셨는가 한다”

시 속 아버지는 백석 자신의 아버지가 아니라, 평안도 시골마을의 한 가장입니다. 추운 겨울밤, 감자 삶는 냄새가 퍼지는 그 집의 풍경이, 이 넓은 들판과 고즈넉한 사찰터에 오버랩됩니다.

미륵사지 박물관 입구 무료 전시관에서 백제 문화를 둘러봤습니다. 백석이 살았던 1930년대에는 이런 유물들이 대부분 일본으로 반출되던 시절이었죠. 그는 시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이제 너무나 오랫동안” “빈집에서 산 것 같다”

백석 익산 미륵사지

식민지 조선, 그리고 분단된 한반도. 백석의 ‘빈집’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잃어버린 조국이었을지도 모릅니다.


3부: 평안도 음식을 익산에서 찾다

백석의 시는 음식으로 가득합니다. ‘여우난골족’에만 해도 감자, 인절미, 송편, 콩가루차떡, 두부, 콩나물, 팥죽, 고사리가 등장하죠.

익산 전통시장 탐방

  • 위치: 익산 중앙시장 (익산역에서 도보 15분)
  • 영업: 오전 7시~오후 7시

시장 떡집에서 백석이 사랑했던 ‘인절미’를 샀습니다. 평안도식 인절미는 남쪽보다 콩고물이 더 많이 묻어있다고 하는데, 이곳 할머니는 “옛날 방식”이라며 콩가루를 듬뿍 쳐주셨습니다.

“고마해라 고마해라” “이 집 며느리는 잘도 고마해라”

시 속 며느리가 떡을 만들 듯, 시장 할머니도 정성껏 떡을 빚으십니다. 60대인 제가 보기에도 70대는 되어 보이는 그 손길에서, 백석이 그리워한 ‘어머니의 손’이 느껴졌습니다.

황등비빔밥 (익산 향토음식)

  • 위치: 익산시 황등면 일대
  • 특징: 익산만의 비빔밥 스타일

황등비빔밥은 백석의 평안도 음식과는 다르지만, ‘지역의 맛’을 지킨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백석이 살아있다면, 분단으로 인해 사라진 평안도 음식들을 이렇게 기록해야 한다고 말했을 것 같습니다.


4부: 가상 전시 – 백석 문학관이 있다면

익산에 백석 문학관이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60대 블로거의 상상으로 꾸며봅니다.

[1전시실: 평안도 정주]

  • 백석의 생가 모형
  • 1930년대 정주 사진 자료
  • “북쪽 땅의 기억” 영상

[2전시실: 시인의 방]

  • 시집 『사슴』 초판본 (1936)
  • 육필 원고 (현재 대부분 소실)
  • 조선일보 출판부 책상 재현

[3전시실: 나타샤의 방]

  • 김영한과의 사진 (실제로는 거의 남아있지 않음)
  • ‘나와 나타샨와 흰 당나귀’ 필사본
  • 길상사 연결 전시

[4전시실: 음식의 시]

  • ‘여우난골족’ 속 음식들 재현
  • 평안도 전통 음식 모형
  • 체험 공간 (인절미 만들기)

[5전시실: 북으로 간 시인]

  • 1948년 이후 행적
  • 북한에서의 백석 (검열과 숙청)
  • “우리가 찾아야 할 시인” 메시지

[야외 공간: 여우난골족 마을]

  • 평안도 시골집 재현
  • 겨울밤 체험 공간
  • 시 낭송 무대

에필로그: 문학관 없는 시인에게

익산에서 하루를 보내고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저는 백석의 시를 다시 펼쳤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중)

백석은 정말로 가난하고 외롭게 죽었습니다. 북한 탄광촌 어디선가 이름 없이 사라졌죠. 남한에는 그의 문학관이 없고, 북한에는 그의 무덤조차 확인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의 시는 살아있습니다.

2024년 겨울, 익산 미륵사지에서 한 60대 블로거가 그의 시를 읽었고, 수많은 독자들이 여전히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사랑합니다.

문학관은 없어도, 시인은 우리 곁에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서울 길상사로 가서 백석의 연인 ‘나타샤’를 만나보겠습니다.


🚩 여행 정보 요약

익산 1일 코스

  1. 익산역 도착 (KTX 2시간)
  2. 미륵사지 관람 (2시간)
  3. 익산 중앙시장 점심 (1시간)
  4. 왕궁리 유적 (선택, 1시간)
  5. 귀가

예산

  • 교통비: 왕복 6만원 (KTX)
  • 식사: 2만원
  • 간식: 1만원
  • 합계: 9만원

추천 계절 겨울 (12월~2월) – 백석의 ‘여우난골족’ 분위기에 가장 적합

백석 2부 나타샤를 찾아서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