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 평안도 음식 순례 – 여우난골족의 밥상을 찾아서. 백석의 시를 읽다 보면 배가 고파집니다.
“인절미, 송편, 콩가루차떡, 두부, 콩나물, 팥죽, 고사리, 감자, 밤, 대추…”
시 ‘여우난골족’ 하나에만 이렇게 많은 음식이 등장합니다. 백석은 단순히 음식을 나열한 것이 아니라, 음식을 통해 고향과 어머니와 잃어버린 시간을 그려낸 것입니다.
프롤로그: “시는 먹는 것이다”
2024년 겨울, 60대 블로거인 저는 백석의 ‘음식 지도’를 그려보기로 했습니다. 평안도 정주는 갈 수 없지만, 서울에서라도 평안도 음식을 맛보며 백석을 추억할 수 있지 않을까요?
1부: 백석 시 속 음식 리스트
백석의 대표 시들을 분석해 음식을 추출했습니다.
[시 ‘여우난골족’의 음식]
- 떡류: 인절미, 송편, 콩가루차떡
- 채소: 콩나물, 고사리, 무, 배추
- 곡물: 감자, 좁쌀, 수수
- 기타: 두부, 팥죽
[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의 음식]
- 밥: 흰 밥 (북한에서 그리워한 음식)
- 국: 배춧국
- 반찬: 소금에 절인 생선
[시 ‘국수’의 음식]
- 국수: 평양냉면과 유사한 메밀국수
- 김치: 동치미 국물
[시 ‘수라’의 음식]
- 수라: 임금님 진지 (제사 음식의 비유)
- 떡: 시루떡
백석에게 음식은 단순한 끼니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기억이고, 고향이고, 어머니의 손길이었습니다.
2부: 서울에서 평안도 음식 찾기
평안도 음식은 남한에서 거의 사라졌지만, 일부 북한 음식 전문점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1. 을밀대 – 평양냉면의 원조]
- 주소: 서울 중구 을지로 12
- 대표 메뉴: 평양냉면, 어복쟁반
- 가격: 냉면 1.6만원
- 영업: 오전 11시~오후 9시
백석의 시 ‘국수’ 재현
“삼년 동안이나 줄을 매어두고” “육수를 우린 꿩고기 국수”
을밀대의 평양냉면은 백석이 그리워했을 평안도 국수와 가장 비슷합니다. 동치미 국물에 메밀국수, 그리고 편육 몇 조각.
60대의 입맛에는 심심할 수 있지만, 이 담백함이야말로 백석 시의 정서입니다.
[2. 우래옥 – 평양냉면 명가]
- 주소: 서울 중구 창경궁로 62-29
- 대표 메뉴: 평양냉면, 갈비구이
- 가격: 냉면 1.8만원
- 영업: 오전 11시~오후 9시
우래옥은 1946년 개업한 평양 실향민 1세대가 차린 집입니다. 백석과 김영한이 1945년 헤어질 때, 서울에서는 이런 평양 음식점들이 하나둘 생겨나고 있었죠.
냉면을 먹으며 백석의 시를 읽습니다.
“나는 이제 너무나 오랫동안” “흰 밥을 먹지 않았다”
북한에서 굶주렸을 백석. 그는 이런 냉면조차 먹지 못했을 것입니다.
[3. 평양면옥 – 가격 착한 평양냉면]
- 주소: 서울 종로구 사직로 48
- 대표 메뉴: 평양냉면
- 가격: 1.2만원
- 영업: 오전 11시~오후 8시
60대 연금 생활자에게는 이 정도 가격대가 부담 없습니다. 맛도 충분히 훌륭합니다.
3부: 평안도 떡 체험 – 인절미 만들기
백석의 시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음식은 떡입니다.
“인절미, 송편, 콩가루차떡, 시루떡…”
평안도 떡의 특징은 콩가루를 많이 쓴다는 것입니다. 특히 인절미는 남쪽보다 콩고물이 2배 이상 들어갑니다.
[서울 떡 박물관 체험 프로그램]
- 주소: 서울 종로구 돈화문로 88
- 체험비: 2만원 (떡 만들기 + 차)
- 예약: 필수 (홈페이지)
저는 ‘평안도 인절미 만들기’ 프로그램에 참가했습니다.
과정:
- 찹쌀가루 반죽 (이미 준비되어 있음)
- 시루에 쪄내기 (20분)
- 절구에 찧기 (가장 힘든 과정!)
- 콩고물 묻히기
60대의 체력으로 떡을 찧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백석의 시에 나오는 “며느리가 떡을 찧는 모습”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고마해라 고마해라” “이 집 며느리는 잘도 고마해라”
떡을 찧으며 이 시구가 절로 나옵니다. ‘고마해라’는 평안도 사투리로 ‘애쓴다, 수고한다’는 뜻입니다.
4부: 백석 음식 지도 – 전국 편
평안도는 못 가지만, 한반도 전역에는 백석 시에 나오는 음식들이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강원도 정선 – 감자 음식]
- 감자떡, 감자옹심이, 감자전
백석의 ‘여우난골족’에서 **”감자를 삶아놓고”**라는 구절. 평안도도 강원도처럼 산간 지역이라 감자가 주식이었습니다.
[전북 익산 – 송편과 시루떡]
- 익산 중앙시장 떡집
앞편에서 소개한 익산 시장에는 전통 방식으로 떡을 만드는 할머니들이 계십니다.
[서울 광장시장 – 두부와 콩나물]
- 광장시장 두부 골목
- 콩나물 국밥
“콩나물도 사다놓고” (여우난골족)
광장시장의 콩나물 국밥은 해장용이지만, 백석이 그린 평안도 시골밥상과 닮아있습니다.
[제주도 – 좁쌀과 수수]
- 제주 오메기떡 (좁쌀)
- 제주 전통 죽
백석은 좁쌀과 수수 같은 잡곡을 많이 썼는데, 이는 가난한 농촌의 현실을 반영한 것입니다.
5부: 60대가 요리하는 백석 레시피
집에서 백석의 시 속 음식을 재현해봤습니다.
[레시피 1: 평안도식 인절미]
재료:
- 찹쌀가루 3컵
- 물 1컵
- 소금 약간
- 콩고물 1컵 (일반 레시피보다 2배)
만드는 법:
- 찹쌀가루에 물과 소금을 넣고 반죽
- 찜기에 20분 찌기
- 절구에 찧기 (없으면 비닐봉지에 넣고 주물러도 됨)
- 콩고물 듬뿍 묻히기
백석의 시구 함께 읽기: “인절미를 해놓고” (여우난골족)
[레시피 2: 감자 팥죽]
재료:
- 감자 2개
- 팥 1컵
- 찹쌀가루 1/2컵
- 소금 약간
만드는 법:
- 팥 삶기 (압력솥 30분)
- 감자 삶아서 으깨기
- 팥 국물에 감자와 찹쌀가루 새알 넣기
- 소금 간하기
백석의 시구 함께 읽기: “팥죽을 쑤어놓고” (여우난골족)
[레시피 3: 평양식 냉국수 (간소화 버전)]
재료:
- 메밀국수 1인분
- 동치미 국물 (또는 무 갈아서 육수에 섞기)
- 편육 조금
- 배 조각
만드는 법:
- 메밀국수 삶아서 찬물에 헹구기
- 동치미 국물에 육수 섞기 (시판 육수 가능)
- 국수에 국물 붓고 편육, 배 올리기
백석의 시구 함께 읽기: “삼년 동안이나 줄을 매어두고 육수를 우린 꿩고기 국수” (국수)
6부: 북한의 백석, 밥을 그리워하다
백석은 1948년 이후 북한에서 어떤 음식을 먹었을까요?
1950년대 – 숙청과 굶주림
백석은 “부르주아 시인”으로 숙청당해 함경도 탄광촌으로 추방됩니다. 그곳에서 그는 흰 밥을 먹지 못했다고 전해집니다.
“나는 이제 너무나 오랫동안” “흰 밥을 먹지 않았다”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이 시는 1930년대에 쓴 것이지만, 마치 1950년대 북한의 백석 자신을 예언한 것 같습니다.
1990년대 – 고난의 행군
1995년부터 북한은 최악의 기근을 겪습니다. 백석이 사망한 1996년은 바로 이 시기입니다.
그는 평생 음식을 시로 쓴 시인이었지만, 정작 본인은 굶어 죽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에필로그: 시는 먹는 것이다
백석의 음식 순례를 마치고, 저는 집에서 인절미를 만들어 봤습니다.
콩고물을 듬뿍 묻힌 인절미를 한 입 베어 물자, 1930년대 평안도 시골마을의 겨울밤이 떠올랐습니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떡을 쪄내는 며느리의 손길 감자 삶는 냄새가 퍼지는 오두막집
백석이 그린 음식은 단순한 요리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잃어버린 고향이고,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2024년 대한민국에서 저는 평안도 음식을 재현하며, 80년 전 북으로 사라진 시인을 추억합니다.
“시는 먹는 것이다.”
백석이 살아있다면, 지금 우리가 먹는 이 인절미를 보며 뭐라고 말했을까요?
아마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요.
“고마해라, 고마해라. 당신들은 잘도 나를 기억해주는구나.”
이것으로 백석을 찾아서 3부작을 마칩니다. 1편 익산, 2편 길상사, 3편 음식. 문학관은 없어도, 백석은 우리 곁에 살아있습니다.
🚩 음식 순례 정보 요약
서울 평안도 음식 1일 코스
- 을밀대 or 우래옥 점심 (평양냉면)
- 광장시장 간식 (콩나물 국밥)
- 떡 박물관 체험 (인절미 만들기)
- 집에서 레시피 재현
예산
- 냉면: 1.5만원
- 간식: 1만원
- 체험: 2만원
- 식재료: 2만원
- 합계: 6.5만원
추천 계절 겨울 (음식이 더 맛있고, 백석 시의 정서에도 적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