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은 연작소설이 보여주는 현실과 철학

황정은 연작소설이 보여주는 현실과 철학 소설가 50인이 연속 선택한 작가의 비밀

“잘 모르면서 바라고, 이어지는 삶” —

일반적으로 문학상은 경쟁입니다. 어떤 작품이 더 뛰어난지를 판단하기 위해 여러 심사위원들이 모여 투표를 합니다.

그런데 한국 문학에는 특별한 상이 있습니다. 바로 “소설가 50인이 뽑은 올해의 소설”입니다.

이것은 경향신문과 교보문고가 매년 소설가 50명에게 물어, “올해 당신이 가장 감동받은 소설은 무엇인가”라고 묻는 것입니다.

이 상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2019년, 황정은의 『디디의 우산』이 1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2020년, 다시 황정은의 『연년세세』가 1위를 차지했습니다.

속 1위. 그리고 『연년세세』의 경우, 무려 14명의 소설가가 추천하며 “압도적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단순히 “황정은이 인기 있는 작가”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한국의 문인들 자신이 황정은을 가장 뛰어난 소설가로 인정했다”는 의미입니다.

‘순자’ 시리즈의 탄생

황정은이 『연년세세』를 집필하기로 한 것은 하나의 질문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순자가 왜 이렇게 많을까?”

이것은 단순한 질문입니다. 하지만 이 질문을 추적해 들어가면, 우리는 한국 사회 전체를 마주하게 됩니다. 왜 특정 이름이 자주 등장할까?

그것은 그 세대가 얼마나 비슷한 경험을 했는지를 의미합니다. 1946년생의 여성들이 겪었던 사회적, 역사적 상황들. 그리고 그들의 딸들, 그리고 손녀들이 지금도 비슷한 문제들과 마주하고 있다는 것.

황정은은 이 질문을 책으로 만들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연년세세』라는 제목으로 발표합니다. 이 소설은 총 4편의 연작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각 편은 다른 세대의 순자들을 다루지만, 그들은 모두 비슷한 문제들과 마주합니다.

“1946년생 순자씨”라는 인물부터 시작하면, 우리는 한국 현대사 전체를 만나게 됩니다. 그 여인은 가난했던 시대를 살았고, 결혼했고, 아이를 낳았고, 자신의 꿈을 미루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딸들도, 그들만의 시대를 살면서, 비슷하지만 다른 형태의 어려움들을 마주합니다.

수평적 시간의 흐름

황정은이 『디디의 우산』을 쓰면서 깨달았던 것이 “대대손손”과 “연년세세”의 차이입니다.

“대대손손”은 수직적입니다. 할아버지에서 아버지로, 아버지에서 아들로. 세대가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수직의 선. 이것은 한국 전통 사회의 시간 개념입니다.

하지만 황정은이 찾던 것은 다릅니다. 그것은 “수평적” 시간입니다. 과거와 현재가 나란히 존재하고, 미래가 현재와 만나는 그런 시간. 누군가의 과거가 누군가의 현재이고, 누군가의 현재가 누군가의 미래가 되는 그런 관계성.

이것이 바로 “연년세세(年年歲歲)”입니다. “해마다, 세월이 거듭되어”라는 사전적 의미 이상의, “시간이 어떻게 우리를 만드는가”에 대한 철학입니다.

역사와 개인이 만나는 지점

황정은의 작품들이 특별한 이유 중 하나는, 그가 항상 “역사”와 “개인”을 함께 다룬다는 것입니다.

『디디의 우산』은 한국의 민주화 운동과 같은 역사적 사건을 다룹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결코 “역사 교과서”처럼 읽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광장에 모여든 “누군가의 아버지”, “누군가의 딸”을 만나게 됩니다. 그들이 왜 그곳에 있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그들의 개인적인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봅니다.

황정은이 이렇게 쓸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가 역사를 “거대한 사건”으로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는 역사를 “사람들의 일상”으로 봅니다. 역사는 박물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 옆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납득할 수 없는 선택”이라는 현실

황정은은 『연년세세』를 쓰면서 무언가 힘들었다고 고백합니다. 등장인물들이 “납득할 수 없는 선택”을 할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고요.

이것은 매우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일반적으로 좋은 소설가들은 자신의 인물들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그들의 행동을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

지만 황정은은 다릅니다. 그는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선택들을 인물들에게 하도록 합니다.

왜? 그것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납득할 수 없는 선택”들을 합니다. 우리는 이성적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종종 모순되고, 때론 우리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행동합니다.

이것은 “잘 모르면서 바라고, 이어지는 삶”이라는 그의 표현과 일치합니다. 우리는 결코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여전히 무언가를 바라고, 그것을 위해 계속 살아갑니다.

현실 묘사의 정교함

황정은의 작품을 읽으면서 처음 느끼는 것은 “이것이 정말 소설인가?”라는 감탄입니다. 그의 현실 묘사는 너무나 정확하고 구체적입니다.

아파트의 냄새, 창밖의 풍경, 누군가의 목소리, 그리고 침묵. 이 모든 것들이 그의 소설에서는 마치 사진처럼 생생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기술”이 아닙니다. 이것은 세상을 보는 방식의 문제입니다.

황정은은 우리가 보통 무시하고 지나치는 것들을 봅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는 사람, 편의점 점원의 작은 표정, 아파트 복도의 소음. 이 모든 것들이 인생의 일부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리얼리즘이 가능한 이유는, 황정은이 “도덕적” 판단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는 어떤 인물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를 판단하지 않습니다. 그냥 관찰합니다. 그리고 그 관찰이 깊을수록, 우리는 모든 인물에 대해 동정심을 갖게 됩니다.

서사에 리듬을 입히기

황정은의 창작 방식은 “서사에 리듬을 입힌다”고 표현됩니다. 이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를 이해하려면, 실제로 그의 소설을 읽으며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보통의 소설들은 사건의 전개에 따라 리듬이 정해집니다. 갈등이 고조되면 빨라지고, 갈등이 해소되면 느려집니다. 하지만 황정은의 소설들은 다릅니다. 그의 소설들은 거의 일정한 속도로 진행됩니다. 심지어 어떤 부분에서는 사건이 거의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재미가 없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독자는 그 일정한 리듬 속에서 빨려 들어가게 됩니다. 마치 파도가 밀물처럼 들어오는 것처럼, 황정은의 서사는 우리의 마음을 천천히 점령합니다.

책과 독자 사이의 대화

황정은은 흥미로운 관찰을 합니다. 자신의 책들 중에서도 특히 『디디의 우산』과 『연년세세』의 경우, “책이라는 매개를 통해 독자와 작가 사이에 대화가 발생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일반적으로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일방향적입니다. 작가가 글을 쓰고, 독자가 그것을 읽습니다. 하지만 황정은이 말하는 “대화”는 다릅니다. 독자가 이 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삶에 대한 질문을 갖게 됩니다. “나도 이렇게 살아왔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는 어떤가?”, “시간이 나를 어떻게 만들었나?”

그 질문이 바로 책 속에 있는 인물들의 질문과 같을 때, 대화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작가와 독자가 같은 질문을 하고 있을 때, 책은 더 이상 일방향의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라 쌍방향의 대화가 됩니다.

일상의 철학, 시간의 철학

황정은의 모든 작품을 관통하는 테마는 “시간”입니다. 시간이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그리고 시간이 우리를 어떻게 정의하는가.

『연년세세』라는 제목부터 “시간”을 말하고 있습니다. “해마다, 세월이 거듭되어”라는 표현은 시간의 누적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 누적된 시간이 결국 우리를 만든다는 철학.

황정은은 이것을 “일상의 철학”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가 다루는 것들은 거대한 철학적 개념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작고 일상적인 것들입니다. 누군가의 엄마로 살아가기, 누군가의 딸로 살아가기,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묻기.

세계와의 대화

황정은은 한국 문학만의 세계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여러 나라에서 번역되고, 국제 문학상의 후보로 오르기도 합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황정은이 다루는 주제들이 “보편적”이라는 의미입니다. 비록 그의 작품의 배경은 한국이지만, 그가 묻는 질문들은 세계의 모든 사람에게 해당됩니다. 시간이란 무엇인가? 사랑이란 무엇인가? 개인의 삶과 역사는 어떻게 연결되는가?

이러한 보편성 때문에, 황정은은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

미래의 기록: 작은 일기

2025년, 황정은은 『작은 일기』라는 에세이를 출간했습니다. 이 책은 “현직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라는 초유의 사태 이후를 배경으로 합니다.

황정은은 이 책에서 “우리의 그날들”에 대해 기록합니다. 불안한 날들, 불확실한 날들, 하지만 그 속에서도 계속되는 일상의 날들.

이것은 황정은의 가장 큰 특징을 다시 한번 보여줍니다. 그는 거대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날 때, 그것을 거대한 주제로 접근하지 않습니다. 대신 개인의 일상 속에서 그 사건이 어떻게 느껴지는지를 기록합니다. 그것이 바로 황정은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깊이 있으면서도 대중적인 문학

흔히 “깊이 있는 문학”과 “대중적인 문학”은 대립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황정은은 이 두 가지를 모두 성취했습니다. 그의 소설은 문학적으로 높은 수준이면서도, 동시에 수십만 명의 일반 독자들이 읽습니다. 그리고 소설가들도 읽습니다.

이것은 그의 작품들이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것”을 다루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딸이고, 누군가의 어머니이고, 누군가의 친구입니다.

우리는 모두 시간 속에서 변화하고, 모두 사랑을 원하고, 모두 무언가를 바라면서 살아갑니다.

이것이 바로 황정은이 받을 수 있는 가장 높은 찬사입니다.

마지막 질문

황정은의 모든 작품을 읽고 나면, 우리는 다시 같은 질문으로 돌아옵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이것은 황정은이 우리에게 던진 질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하지만 황정은의 소설을 읽음으로써, 우리는 이 질문이 그렇게도 중요하고, 그렇게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문학의 가장 큰 선물입니다.

황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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